2026/09/01

설악산 공룡능선, 국립공원 제1경으로 꼽히는 대한민국 최고의 능선

공룡능선은 몇 해 동안 버킷리스트 맨 위에 있던 길이었습니다. 총거리 20km 안팎,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당일 최장급 코스라 미루기만 하다가, 9월 마지막 주 평일에 휴가를 내고 설악동으로 갔습니다. 전날 소공원 근처에서 자고 새벽 세 시에 헤드랜턴을 켜고 출발했습니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통제 여부를 확인한 게 전날 밤이었습니다.

어둠 속 마등령 오르막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는 평지에 가까워 몸을 푸는 구간입니다. 비선대를 지나 금강굴 갈림길부터 마등령까지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이 구간이 공룡능선 산행에서 가장 지루하고 힘든 곳이었습니다. 랜턴 불빛 안에 돌계단만 끝없이 이어졌고, 세 시간 가까이 올라 마등령삼거리에 닿았을 때 동쪽 하늘이 밝아 오고 있었습니다. 해발 1,200m가 넘는 곳인데 땀이 식자 금세 추워져 겉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마등령 오름길에 날이 밝았습니다. 능선 아래 숲부터 단풍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마등령 오름길에 날이 밝았습니다. 능선 아래 숲부터 단풍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공룡의 등뼈 위로

마등령삼거리에서 공룡능선에 들어섰습니다. 나한봉(1,298m)을 넘자 눈앞에 톱니처럼 이어진 암봉들이 나타났습니다.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가 줄지어 솟은 모습이 정말 거대한 공룡 한 마리가 설악 한가운데 엎드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등령에서 무너미고개까지 약 5km, 거리만 보면 짧은데 바위 오르내림이 쉼 없이 반복되어 국내 정규 탐방로 중 최상급 난이도로 꼽힌다는 말이 첫 봉우리에서부터 실감 났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날카롭게 솟은 암봉들. 나한봉을 넘어서자 이 풍경이 열렸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날카롭게 솟은 암봉들. 나한봉을 넘어서자 이 풍경이 열렸습니다.
능선 곳곳에서 만난 기암. 바람과 비가 빚은 조각품 사이를 지나는 기분이었습니다.
능선 곳곳에서 만난 기암. 바람과 비가 빚은 조각품 사이를 지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곧추선 암봉. 이런 첨탑이 능선 내내 이어졌습니다.
하늘을 향해 곧추선 암봉. 이런 첨탑이 능선 내내 이어졌습니다.

큰새봉을 지나 1275봉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서쪽에서 구름이 밀려왔습니다. 방금까지 파랗던 하늘이 몇 분 만에 운무에 잠겼습니다. 공룡능선은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분수령에 있어 기상 변화가 심하다더니, 그 말이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구름 사이로 암봉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이 맑은 하늘 아래보다 오히려 더 극적이었습니다.

운무 속에 드러나는 톱니 같은 암봉들. 공룡의 등뼈라는 이름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운무 속에 드러나는 톱니 같은 암봉들. 공룡의 등뼈라는 이름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단풍과 운무가 어우러진 능선. 1275봉 아래에서 구름이 밀려오던 때입니다.
단풍과 운무가 어우러진 능선. 1275봉 아래에서 구름이 밀려오던 때입니다.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 이날 하늘은 잠시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능선을 넘나드는 구름. 이날 하늘은 잠시도 같은 모습으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1275봉, 그리고 신선대

공룡능선의 상징인 1275봉 아래 안부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르내림이 반복되니 배가 빨리 꺼졌고,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아 소금을 챙겨 먹었습니다. 계단과 안전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어 위험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체력 안배가 전부인 길이었습니다. 암봉 위에서 쉬어 가는 분들을 보며 저도 서두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잘 정비된 돌계단. 오르내림이 쉼 없이 이어지는 것이 공룡능선의 난이도입니다.
잘 정비된 돌계단. 오르내림이 쉼 없이 이어지는 것이 공룡능선의 난이도입니다.
암봉 위에서 쉬어 가는 등산객. 공룡능선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게 요령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암봉 위에서 쉬어 가는 등산객. 공룡능선에서는 서두르지 않는 게 요령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천화대의 바위 군락을 지나 능선 남쪽 끝 신선대에 올라섰습니다. 구름이 잠깐 걷히면서 걸어온 공룡능선 전체가 한 화면에 들어왔습니다. 서쪽으로는 용아장성의 날카로운 암릉과 가야동계곡이, 동쪽으로는 천불동계곡 너머 울산바위와 속초 시가지, 그 뒤로 동해가 펼쳐졌습니다. 반대편에서 올라온 분들이 여기서 처음 공룡능선과 마주하며 탄성을 지르는 걸 보니, 저도 여덟 시간 전 마등령에서 그랬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신선대에서 돌아본 공룡능선 파노라마. 저 봉우리들을 전부 넘어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신선대에서 돌아본 공룡능선 파노라마. 저 봉우리들을 전부 넘어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능선 동쪽으로 멀리 울산바위와 동해가 내려다보였습니다.
능선 동쪽으로 멀리 울산바위와 동해가 내려다보였습니다.

천불동계곡으로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계곡 상류는 벌써 단풍이 붉게 들어 있었고, 철계단 위로 단풍잎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었지만 양폭과 오련폭포를 지나며 계곡 물소리를 듣는 동안 조금씩 회복됐습니다. 비선대를 지나 소공원에 내려오니 저녁 다섯 시 반, 열네 시간 반 만이었습니다.

천불동계곡 하산길. 붉은 단풍 아래로 철계단이 이어졌습니다.
천불동계곡 하산길. 붉은 단풍 아래로 철계단이 이어졌습니다.

공룡능선은 분명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능선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 모든 수고를 잊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국립공원 100경 중 제1경, 국가지정 명승이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 걸어 보고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산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버킷리스트 맨 위에 올려 두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산행 메모
코스: 소공원 → 비선대 → 금강굴 → 마등령삼거리 → 공룡능선 → 신선대 → 무너미고개 → 천불동계곡 → 소공원 (약 20km, 14시간 30분 · 휴식 포함)
난이도: 최상급. 계단·안전시설은 잘 되어 있으나 오르내림이 쉼 없이 반복. 체력 안배가 전부
주차: 설악동 소공원 주차장. 전날 근처 숙박 후 새벽 3시 전후 출발 권장
추천 시기: 9월 말~10월 중순 단풍. 겨울은 위험도가 크게 높아짐. 봄·가을 산불조심기간 통제 여부 국립공원공단 확인 필수
준비물: 헤드랜턴, 물 2L 이상, 행동식 넉넉히, 방풍 겉옷, 소금·전해질. 기상 변화가 심하니 비옷도

대한민국의 다른 명산 산행기는 mountain100.com에서 이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공룡능선을 담은 힐링 영상

공룡능선 사진에 직접 만든 잔잔한 연주곡을 입힌 9분짜리 영상입니다. 일하거나 책을 읽을 때, 잠들기 전에 소리만 틀어 두셔도 좋습니다.

더 많은 산과 음악은 유튜브 Still Times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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