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영암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월출산이 나타났습니다. 평평한 남도 들녘 위로 느닷없이 솟구친 바위산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데,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주변에 견줄 산이 없으니 809m라는 높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우뚝했습니다.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산에 오르기도 전에 알 것 같았습니다. 천황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침 여덟 시였습니다.
천황사 코스, 처음부터 가파르게
천황사에서 구름다리를 거쳐 천황봉으로 오르는 길은 약 3km, 두 시간 안팎으로 거리는 짧지만 월출산에서 가장 가파른 코스입니다. 시작부터 돌계단과 철계단이 이어졌고, 30분도 안 돼 겉옷을 벗었습니다. 능선 위로는 아침 안개가 남아 있었고, 응달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얼어붙어 있어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구름다리 위에서
한 시간쯤 오르자 구름다리가 나타났습니다. 길이 54m, 폭 60cm 안팎의 좁은 다리가 두 암봉 사이를 잇고 있었습니다. 다리 위에 서니 발아래로 깊은 협곡이 떨어지고 사방으로 바위 능선이 펼쳐졌습니다. 바람이 세서 난간을 잡고 천천히 건넜는데, 중간에 멈춰 사진을 찍으려니 손이 떨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월출산의 바위가 제대로 시작됐습니다.
월출산은 국립공원 가운데 손꼽히게 작은 면적이지만, 그 좁은 안에 화강암 기암괴석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첨탑처럼 뾰족한 봉우리, 층층이 결을 드러낸 절벽, 홀로 우뚝 선 거대한 바위가 능선을 따라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오랜 세월 풍화가 만들어 낸 형상인데,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어 사진을 찍다 보니 걸음이 자꾸 늦어졌습니다.
천황봉, 들녘을 내려다보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반 만에 천황봉(809m)에 섰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건 산이 아니라 들녘이었습니다. 영암과 강진의 논밭이 평평하게 깔렸고, 안개가 걷히면서 멀리 강줄기까지 눈에 들어왔습니다. 높이는 809m지만 주변이 평지라 체감 고도는 훨씬 높았습니다. 이름이 '달이 뜨는 산'이라는 뜻이라는데, 이 바위 봉우리 사이로 달이 걸리는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경포대로 하산
하산은 반대편 경포대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약 5.9km, 세 시간 남짓으로 월출산에서는 비교적 수월한 길입니다. 능선 곁에 뿌리내린 소나무들과 마른 억새 너머로 솟은 암봉을 보며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구정봉 아래 절벽에 새겨진 국보 마애여래좌상은 도갑사 쪽 코스에 있어 이번엔 보지 못했는데, 높이 8.6m라니 다음에는 그 길로 올라 볼 생각입니다. 경포대에 내려오니 오후 두 시, 전체 9km에 여섯 시간 걸렸습니다.
월출산은 높이로 기억되는 산이 아니라 형상으로 기억되는 산이었습니다. 들녘 한가운데 홀로 솟아 오르는 내내 바위가 만든 풍경을 보여 줍니다. 어느 코스든 바위와 계단이 많으니 접지력 좋은 등산화는 필수이고, 겨울에는 아이젠도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코스: 천황탐방지원센터 → 구름다리 → 천황봉 → 경포대 (약 9km, 6시간 · 휴식 포함). 들머리·날머리가 달라 차량 회수 필요
난이도: 천황사 코스 상급(급경사·철계단), 경포대 코스 중급, 도갑사 코스(마애여래좌상 경유) 중상급
주차: 천황탐방지원센터 주차장, 경포대 주차장
추천 시기: 봄 진달래·철쭉, 가을 억새·단풍, 겨울 잔설. 여름은 그늘이 적어 이른 아침 산행 권장
준비물: 접지력 좋은 등산화, 겨울엔 아이젠·장갑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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