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100대 명산인데도, 정작 백운대를 단풍이 절정일 때 올라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봄이나 초여름에만 다녀왔습니다. 10월 셋째 주 토요일, 전날 밤 예보에 미세먼지 없이 맑다는 말이 떠서 새벽에 알람을 맞췄습니다. 이번에는 사람 많은 북한산성 쪽 대신 우이동에서 하루재를 넘어 백운산장을 지나는 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우이동에서 출발
7시 20분, 우이동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기온은 8도. 반팔 위에 바람막이 하나를 걸치고 도선사 쪽 포장도로를 걸어 올랐습니다. 이 도로 구간이 생각보다 깁니다. 백운탐방지원센터까지 40분 가까이 걸었고, 거기서부터가 진짜 산길입니다. 센터를 지나자마자 하루재까지 쉬는 구간 없이 오르막이 이어졌습니다. 10분도 안 돼 바람막이를 벗었고, 숨이 턱에 차서 두 번쯤 멈춰 섰습니다. 그래도 바위 사이로 먼저 붉어진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니 발이 다시 움직였습니다.
하루재 넘어 백운산장
하루재에 올라서니 비로소 숨 돌릴 평지가 나왔습니다. 고개를 넘어 인수암 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화강암 사면을 따라 걷습니다. 아침 햇빛이 바위에 비스듬히 들어와 하얗게 빛났고, 그 위에 올라앉은 단풍나무가 유난히 붉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바위가 미끄럽지 않은지 발끝으로 확인하며 걸었습니다.
백운산장은 해발 약 650m에 있습니다. 1924년에 처음 지어진 우리나라 첫 산장이라는데, 1992년 불에 탔다가 산악인들이 돈을 모아 1998년에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은 산악 역사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산장 앞 벤치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10분쯤 쉬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르는 데 센터에서 50분 정도 걸렸습니다.
백운봉암문, 성곽 옆 계단
산장에서 가파른 돌길을 15분쯤 더 오르면 백운봉암문입니다. 예전에는 위문이라고 불렀던 북한산성의 작은 문인데, 여기서 백운대 정상까지 마지막 0.3km가 시작됩니다. 암문을 지나면 성곽을 왼쪽에 끼고 돌계단을 오릅니다. 앞사람 등만 보고 오르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서울 시가지가 발 아래 깔려 있었습니다. 옅은 연무 위로 건물들이 아련하게 떠 있는 모습이 꼭 다른 도시 같았습니다.
계단을 반쯤 올랐을 때 오른쪽으로 인수봉이 통째로 나타났습니다. 단풍이 든 비탈 위로 매끈한 암봉이 솟아 있는데, 이 산을 수십 번 왔어도 이 각도에서 이 색으로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인수봉은 높이 약 810m로, 장비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암벽 등반의 봉우리입니다. 그래서 더 올려다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암반 위에서 본 것들
성곽 구간이 끝나면 넓은 암반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이곳저곳 흩어져 앉아 쉬는 곳인데, 저도 배낭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봤습니다. 남쪽으로는 만경대 쪽 능선이 바위 이빨을 세운 채 이어지고, 그 뒤로 산줄기가 겹겹이 포개져 있었습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암봉 능선 너머로 시가지가 끝없이 펼쳐집니다. 하늘이 워낙 맑아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암반 가장자리에 서서 내려다본 단풍 능선은 이날 가장 색이 진한 장면이었습니다. 붉은색과 주황색이 능선을 따라 띠처럼 흘러내리고, 그 끝에 시가지가 연무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바람이 제법 불어 모자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쇠난간을 잡고
정상 직전은 매끈한 화강암 슬랩에 쇠난간을 박아 놓은 구간입니다.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가팔라서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한 칸씩 올라야 합니다. 주말이라 오르는 줄과 내려오는 줄이 겹쳐 중간중간 멈춰 서서 기다렸습니다. 장갑을 끼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여기서 했습니다. 맨손으로 쇠난간을 잡은 분들은 손이 시리다고 했습니다.
난간을 따라 옆으로 걷는 구간에서는 발 아래로 산줄기가 쏟아지듯 내려갑니다. 고소공포가 있는 분이라면 아래를 보지 않고 난간만 보고 걷는 편이 낫습니다. 저도 사진 한 장 찍고는 바로 시선을 바위로 돌렸습니다.
백운대 정상, 836m
9시 50분, 백운대 정상에 섰습니다. 센터에서 2시간, 주차장에서는 2시간 40분 걸린 셈입니다. 정상 바위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고, 그 옆 바위에는 1919년에 새겼다는 3·1운동 암각문이 있습니다. 백운대는 836m로 서울에서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옆의 인수봉, 만경대와 함께 세 봉우리가 뿔처럼 솟아 있어 고려 때부터 이 산을 삼각산이라 불렀고, 북한산이라는 이름이 공식이 된 것은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15번째 국립공원입니다. 정상은 생각보다 넓어 앉을 자리가 있었습니다. 바위 한쪽에 자리를 잡고 20분을 앉아 있었습니다. 사방이 다 트여 어디를 봐도 능선이고 어디를 봐도 시가지였습니다.
같은 길로 하산
하산은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짚었습니다. 쇠난간 구간은 내려갈 때가 더 조심스럽습니다. 뒤로 돌아서서 사다리 내려가듯 난간을 잡고 내려왔습니다. 암문을 지나 산장 쪽으로 내려서는 길에 인수봉이 다시 가까이 보였습니다. 올라갈 때보다 해가 높아져 단풍 비탈의 색이 한층 진해져 있었습니다.
만경대 암봉군은 하산길에 더 잘 보였습니다. 희끗한 바위 덩어리 사이사이에 단풍이 박혀 있는데, 바위 색과 단풍 색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산도 드물 것 같습니다. 만경대는 높이 약 800m로 백운대 바로 옆에 솟아 있어, 하산 내내 왼쪽에 두고 걷게 됩니다.
바위 너머로 만경대와 그 뒤 겹겹 능선이 한 번 더 열리는 자리에서 마지막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넣었습니다. 백운산장에서 다시 10분 쉬고, 하루재를 넘어 센터까지 내려오니 12시 10분이었습니다. 도로를 걸어 주차장에 닿은 시각은 12시 50분. 총 거리는 도로 구간을 포함해 약 8km, 쉬는 시간을 넣어 5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암릉과 단풍을 반나절에 볼 수 있다는 게 새삼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코스: 우이동 입구 – 도선사 – 백운탐방지원센터 – 하루재 – 백운산장 – 백운봉암문 – 백운대 (왕복, 도로 포함 약 8km · 휴식 포함 5시간 반, 센터 기준 편도 약 1.9km · 1시간 30분~2시간)
난이도: 중상 (센터부터 쉼 없는 오르막, 정상 직전 쇠난간 암벽 구간)
주차: 우이동 입구 공영주차장 (주말 아침 일찍 가야 자리가 있고, 도선사 방면 도로는 혼잡)
추천 시기: 10월 중순~하순 단풍,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
준비물: 장갑(쇠난간 필수), 접지력 좋은 등산화, 물 1L 이상, 바람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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