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0

지리산 칠선계곡, 칠선교에서 선녀탕·옥녀탕 지나 비선담까지 걷는 함양의 여름 계곡 산행

지리산 칠선계곡은 오래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힌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비선담 너머는 예약 탐방제로만 열리는 곳이라 늘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올여름, 예약 없이 걸을 수 있는 추성에서 비선담까지만이라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폭포가 일곱, 소(沼)가 서른셋이라는 골짜기의 첫 관문만 보고 와도 충분하겠다 싶었습니다.

칠선계곡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서 시작해 지리산 정상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골짜기입니다. 지리산은 1967년 우리나라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고, 칠선계곡 상류 구간은 1990년대 말부터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다가 지금은 봄·가을 정해진 기간에만 하루 60명 안팎의 예약 탐방객에게 가이드 동반으로 열립니다. 제가 걸은 추성주차장에서 비선담까지는 편도 4km 남짓, 연중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구간입니다.

추성주차장에서 칠선교까지

8월 초 토요일, 아침 7시 조금 넘어 추성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함양 읍내에서 마천을 지나 추성리까지 들어오는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지만 이른 시간이라 차가 거의 없었습니다. 기온은 22도 안팎, 계곡 마을답게 공기가 서늘했습니다. 마을 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니 계곡 위에 붉은 다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칠선교입니다. 다리 아래로는 벌써 큼직한 바위들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본격적인 계곡길이 시작된다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칠선교입니다. 이 붉은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계곡길이 시작됩니다.
칠선교입니다. 이 붉은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계곡길이 시작됩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길은 계곡을 왼쪽에 두고 숲속 사면으로 올라붙었습니다. 나무 계단과 데크가 잘 놓여 있어 발 디디기는 편했지만, 아침인데도 습기가 많아 금방 등에 땀이 배었습니다.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하늘을 덮어 길은 온통 초록 그늘이었습니다.

칠선교를 건너 숲으로 들어서는 나무 계단길. 그늘은 깊은데 습기가 대단했습니다.
칠선교를 건너 숲으로 들어서는 나무 계단길. 그늘은 깊은데 습기가 대단했습니다.

두지동을 지나 사면길로

30분쯤 오르니 두지동 마을 쉼터가 나왔습니다. 두지는 뒤주를 뜻하는 말로, 옛날 가야의 구형왕이 군량미를 두었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합니다. 평상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숨을 골랐습니다. 여기서부터 선녀탕까지는 계곡과 조금 떨어진 사면길이 이어집니다. 물소리는 계속 아래쪽에서 들리는데 물은 보이지 않는, 조금은 지루한 구간이었습니다. 다만 중간중간 데크 전망 자리에서 계곡 아래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고, 그날은 하늘이 맑아 흰 구름이 능선 위로 떠 있었습니다.

사면길 데크에서 내려다본 계곡. 물은 아직 멀었지만 하늘이 참 맑았습니다.
사면길 데크에서 내려다본 계곡. 물은 아직 멀었지만 하늘이 참 맑았습니다.

사면길이 끝나고 길이 계곡으로 내려서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확 밀려왔습니다. 집채만 한 바위들이 물길을 막아선 사이로 물이 이리저리 갈라져 흐르고 있었습니다. 여름 장마 끝이라 수량이 많아 바위를 넘는 물소리가 꽤 컸습니다. 여기서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갔는데, 10초를 못 버틸 만큼 차가웠습니다.

사면길에서 계곡으로 내려선 자리. 바위 사이로 물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흘렀습니다.
사면길에서 계곡으로 내려선 자리. 바위 사이로 물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흘렀습니다.

선녀탕, 그리고 나무 다리 위에서

추성주차장을 떠난 지 한 시간 반쯤 되어 선녀탕에 닿았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붙은 자리입니다. 넓적한 암반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짙은 초록빛 소를 이루고 있었는데,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의 돌이 다 들여다보였습니다. 소 위로 나무 다리가 하나 걸려 있고, 먼저 온 사람들이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선녀탕 어름의 소. 암반을 타고 내린 물이 초록빛으로 고여 있었습니다.
선녀탕 어름의 소. 암반을 타고 내린 물이 초록빛으로 고여 있었습니다.
소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다리. 여기서 20분을 앉아 있었습니다.
소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다리. 여기서 20분을 앉아 있었습니다.

다리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물빛이 하늘빛을 받아 파랗게도, 나무 그림자를 받아 초록으로도 보였습니다. 여기서 20분을 앉아 있었습니다. 땀이 식으니 오히려 서늘할 정도였습니다.

옥녀탕 가는 길

선녀탕에서 옥녀탕까지는 멀지 않습니다. 길은 계곡을 바짝 따라가며 크고 작은 폭포를 연달아 지났습니다. 바위를 미끄러지듯 타고 내리는 작은 폭포, 넓은 암반 위를 얇게 펼쳐져 흐르는 물, 바위 틈새로 좁게 쏟아지는 물줄기까지, 같은 물인데도 자리마다 표정이 달랐습니다. 사진을 찍느라 걸음이 자꾸 느려졌습니다.

바위를 미끄러지듯 타고 내리는 작은 폭포. 물보라잀 얼굴까지 날아왔습니다.
바위를 미끄러지듯 타고 내리는 작은 폭포. 물보라잀 얼굴까지 날아왔습니다.
넓은 암반 위로 물이 얇게 펼쳐져 흐르던 자리입니다.
넓은 암반 위로 물이 얇게 펼쳐져 흐르던 자리입니다.

옥녀탕은 선녀탕보다 좀 더 깊고 어두운 느낌이었습니다. 양쪽으로 바위가 높이 솟아 햇빛이 늦게 드는 자리라 물빛도 한층 짙었습니다. 폭포 소리가 골짜기에 울려서 옆 사람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옥녀탕 부근. 양쪽 바위가 높아 한낮인데도 그늘이 깊었습니다.
옥녀탕 부근. 양쪽 바위가 높아 한낮인데도 그늘이 깊었습니다.
바위 사이로 쏟아지는 물줄기. 삼각대를 세우고 한참을 찍었습니다.
바위 사이로 쏟아지는 물줄기. 삼각대를 세우고 한참을 찍었습니다.

비선담, 자유 탐방의 끝

옥녀탕에서 비선담까지는 400m 남짓입니다. 길 끝에 비선담 통제소가 서 있었고, 그 너머로 이어지는 길에는 예약 탐방객만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가 걸려 있었습니다. 칠선폭포, 대륙폭포, 삼층폭포, 마폭포로 이어진다는 상류는 여기서 눈으로만 가늠해야 했습니다. 통제소 아래쪽 바위에 앉아 마지막 폭포를 오래 바띻봤습니다. 물이 바위 턱을 넘어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이 이 계곡이 왜 비경이라 불리는지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비선담 아래의 폭포.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물을 보며 다음에는 상류를 예약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비선담 아래의 폭포.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물을 보며 다음에는 상류를 예약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을 그대로 되짚었습니다. 사면길은 내리막이라 금방이었지만, 한낮이 되자 습도가 올라 두지동 쉼터에서 다시 한 번 쉬어야 했습니다. 칠선교를 건너 주차장에 돌아오니 낮 12시 반이었습니다. 왕복 8.5km 안팎, 쉬는 시간을 넉넉히 포함해 5시간이 걸렸습니다.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9.7km 중 절반도 못 걸은 셈이지만, 처음 보는 칠선계곡의 물빛은 그것만으로도 오래 남았습니다. 비선담 너머 일곱 폭포는 가을 예약으로 미뤄 두었습니다.

산행 메모
코스: 추성주차장 → 칠선교 → 두지동 → 선녀탕 → 옥녀탕 → 비선담 → 원점회귀 (왕복 8.5km 안팎, 4~5시간)
난이도: 중하 (비선담까지는 계단·데크 정비, 두지동~선녀탕 사면길이 길어 지루함)
주차: 추성주차장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성수기 주말은 이른 도착 권장
추천 시기: 수량이 많은 7~8월. 비선담 상류는 봄·가을 한정 예약 탐방제(국립공원공단 예약, 연도별 일정 확인)
준비물: 물 1.5L 이상, 미끄럼 방지 등산화, 여벌 양말, 상류 구간은 통신이 안 되는 곳이 있어 미리 지도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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