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예보가 있던 1월 어느 날, 완주 대둔산으로 향했습니다. 가을 단풍으로 이름난 산이지만 눈 내린 대둔산의 구름다리 사진을 한 번 본 뒤로 겨울에 꼭 가 보고 싶었습니다. 케이블카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침 여덟 시 반, 밤사이 내린 눈이 주차장에도 5cm쯤 쌓여 있었고 봉우리 쪽은 운무에 잠겨 보이지 않았습니다.
케이블카로 단숨에
첫 산행이라 걸어 오르는 대신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927m 구간을 5~6분에 올라가는데, 창밖으로 눈 덮인 바위 봉우리가 운무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상부 승강장에서 내려 아이젠을 차고 계단을 오르자 10분도 안 돼 금강구름다리 아래에 섰습니다.
금강구름다리
임금바위와 입석대라는 두 바위 봉우리를 잇는 다리로, 길이 50m에 아래 허공까지 높이가 81m입니다. 1977년에 처음 놓인 우리나라 산악 현수교의 시초 격이라고 합니다. 바닥이 트여 있어 발아래가 그대로 내려다보였고, 눈 쌓인 다리 위를 한 사람씩 천천히 건넜습니다. 중간쯤에서 멈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다리가 살짝 흔들려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삼선계단, 51도
구름다리를 건너면 삼선계단이 기다립니다. 경사 51도, 길이 36m 남짓한 철계단인데 오르내리는 사람이 엇갈리면 위험해서 올라가는 방향으로만 통행합니다. 눈이 쌓인 계단을 한 칸씩 밟으며 올랐습니다. 중간에 뒤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결국 돌아봤고, 발아래 구름다리가 장난감처럼 작아 보여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고소공포가 있으신 분은 우회로가 있으니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고대, 그리고 마천대
삼선계단을 지나자 능선의 나무마다 상고대가 하얗게 피어 있었습니다. 눈 온 다음 날 기온이 낮고 습기가 남은 아침이면 이렇게 서리꽃이 핀다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검은 바위와 소나무, 붉은 구름다리, 흰 서리꽃이 한 화면에 들어오는 풍경을 보며 걸음이 자꾸 멈췄습니다. 운무가 오르내려 봉우리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해 산이 훨씬 깊어 보였습니다.
정상 마천대(878m)에는 은빛 개척탑이 서 있었습니다. 하늘에 닿는다는 뜻의 마천대(摩天臺)는 원효대사가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합니다. 정상부가 트여 있어 사방으로 산줄기가 겹겹이 펼쳐졌고, 운무가 걷힌 틈으로 아래 마을과 들녘이 내려다보였습니다. 바람이 세서 오래 서 있지는 못하고 탑 뒤에서 보온병 커피를 마셨습니다.
걸어서 하산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었습니다. 거리는 길지 않은데 바위 사이 계단이 계속 이어져 무릎에 부담이 왔습니다. 실제로 힘든 건 거리보다 고도감이었습니다. 케이블카 주차장에 내려오니 낮 열두 시 반, 케이블카 이용을 포함해 네 시간 걸렸습니다. 뒤돌아보니 아침에 운무에 잠겨 있던 봉우리들이 그제야 전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대둔산은 높이로 승부하는 산이 아니라 밀도로 승부하는 산이었습니다. 짧은 거리 안에 바위와 구름다리, 계단과 전망이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처음 가시는 분이라면 케이블카로 부담을 줄이고 정상에서 시간을 넉넉히 쓰시길 권합니다. 겨울에는 아이젠과 장갑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코스: 케이블카 주차장 → (케이블카) → 금강구름다리 → 삼선계단 → 마천대 → 도보 하산 → 주차장 (도보 약 4km, 총 4시간)
난이도: 중급. 거리보다 고도감이 힘듭니다. 삼선계단은 우회로 있음
주차: 완주 쪽 케이블카 주차장. 단풍철 주말은 정체 심함
추천 시기: 단풍 10월 하순, 눈·상고대는 눈 온 다음 날 아침 (평일 권장)
준비물: 겨울엔 아이젠·장갑 필수. 구름다리·계단 구간 난간을 잡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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