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어느 일요일, 새벽까지 비가 내리다 아침에 그쳤습니다. 멀리 가기엔 늦은 시간이라 서울에서 한 시간 반이면 닿는 천안 광덕산을 골랐습니다. 광덕산은 블랙야크 100대 명산에 든 산인데, 이 블로그가 순서대로 따라가는 산림청 100대 명산 목록과는 다른 목록이라 번외로 다녀온 셈입니다. 광덕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홉 시, 비 그친 직후라 주차장이 한산했습니다.
일주문에서 광덕사까지
산행은 광덕사 일주문에서 시작합니다. 주차장에서 절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비에 젖은 숲 냄새가 진했고, 물기 머금은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절까지는 10분 남짓, 산행이라기보다 산책이었습니다.
광덕사는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인데, 이 절이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유청신이 원나라에서 호두나무 묘목을 가져와 이곳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그래서 이 일대를 우리나라 호두나무 시배지로 봅니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수령 400년쯤 된 호두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천안 호두과자가 어디서 왔는지 늘 궁금했는데 답이 절 마당에 있었습니다. 나무 아래에서 한참 올려다봤습니다.
흙길, 그리고 계단
절을 지나면 곧 흙길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광덕산은 바위가 드러난 산이 아니라 흙과 숲으로 덮인 육산이라 길 대부분이 부드러운 흙길입니다. 비 온 뒤라 군데군데 질척였지만 미끄러운 바위가 없어 걱정은 없었습니다. 다만 중턱부터 경사가 제법 서고 계단이 이어지는 구간이 나왔습니다. 짧지만 숨이 찼고, 습도가 높아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정상, 그리고 안개
출발한 지 한 시간 20분쯤 지나 정상에 섰습니다. 해발 699m, 천안과 아산을 통틀어 가장 높은 곳입니다. 나무 데크와 표지 조형물이 놓여 있어 블랙야크 인증 사진을 찍는 분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맑은 날에는 천안·아산 시가지와 주변 산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는데, 이날은 비가 그친 직후라 능선 너머가 온통 안개였습니다. 아쉬웠지만 안개 속 능선도 나름의 맛이 있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하산
하산길에는 계곡을 따라 걷는 구간이 있습니다. 규모가 큰 계곡은 아니지만 밤새 내린 비로 물소리가 제법 컸습니다. 물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10분쯤 쉬었는데, 한여름인데도 발이 시릴 만큼 차가웠습니다. 절 마당까지 내려오니 열두 시 조금 전, 7km 남짓에 세 시간 걸렸습니다.
이름난 절경으로 승부하는 산은 아닙니다. 대신 접근이 쉽고, 길이 순하고, 산 아래에 볼거리가 있습니다.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으니 주말 아침에 가볍게 걸을 산을 찾는다면 후보로 두셔도 좋겠습니다. 조망을 노리신다면 저처럼 비 온 직후 말고, 하루쯤 지난 맑은 날을 고르시길 권합니다.
코스: 광덕사 주차장 → 일주문 → 광덕사 → 정상 → 계곡길 → 광덕사 (약 7km, 3시간 · 휴식 포함)
난이도: 쉬움~보통. 위험 구간 없음, 중턱 계단만 조금 가파름
주차: 광덕사 주차장. 서울에서 약 1시간 30분
추천 시기: 사철 무난. 조망은 비 온 뒤 하루 지난 맑은 날, 여름엔 계곡 하산길이 시원함
참고: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 장소는 정상 표지 조형물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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