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주말, 달력은 아직 여름인데 새벽 공기에는 가을 냄새가 살짝 섞여 있었습니다. 순창 용궐산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해발 646m 안팎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섬진강 위 수직 암벽에 걸어 놓은 잔도 '하늘길'을 언젠가 꼭 한 번 걸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2021년 봄 530m 남짓으로 처음 열렸다가 그 뒤 1,096m로 늘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미룰 이유가 없었습니다.
치유의숲 주차장에서 출발
전북 순창군 동계면, 용궐산치유의숲 주차장에 차를 댄 것이 아침 8시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주차는 무료였고, 매표소에서 입장료 4,000원을 내니 2,000원짜리 순창사랑상품권을 돌려주었습니다. 하늘은 구름 몇 점만 떠 있을 뿐 새파랬고, 기온은 이미 25도를 넘어 있었습니다. 들머리부터 돌계단이 곧장 시작됩니다. 완만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여름 끝자락의 습기 속에서는 결코 완만하지 않았습니다. 15분쯤 오르니 등이 흠뻑 젖었고, 숨을 고르려고 몇 번이나 멈춰 섰습니다.
돌계단이 끝나자 눈앞에 거대한 화강암 슬랩이 나타났습니다. 매끈하게 기울어진 바위가 하늘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고, 그 위에 가느다란 데크 난간이 보였습니다. 여기서부터가 하늘길입니다.
하늘길, 바위벽에 매달린 잔도 위에서
데크에 첫발을 올리는 순간 탄성이 나왔습니다. 바위벽에 그대로 붙여 놓은 길이라 난간 너머는 곧장 허공이고, 그 아래로 섬진강이 초록 산 사이를 크게 휘감아 돌고 있었습니다. 데크는 생각보다 단단했지만, 발밑 틈으로 바위 아래가 내려다보이니 처음 몇 걸음은 난간을 꼭 쥐게 되었습니다.
전망 데크 하나에 자리를 잡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섬진강은 북쪽 임실 쪽에서 흘러와 산 아래를 적시고 남쪽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높이에서 보니 강이 산을 감싸 안은 것인지 산이 강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갈 때마다 땀이 식으면서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잔도 중간중간 슬랩에는 큼직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계산무진(谿山無盡)', 안중근 의사의 '제일강산(第一江山)' 같은 옛 명필의 글을 바위에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계곡과 산이 끝이 없다는 뜻의 글귀를 이 자리에서 읽으니 괜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길은 슬랩을 옆으로 가로지르다가 다시 계단으로 꺾여 오르기를 반복했습니다. 용궐산이라는 이름은 '용의 궁궐'이라는 뜻인데, 원래 용골산(龍骨山)이던 것을 2009년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 잔도가 바로 용의 날개 자리에 놓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바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기분이 더 실감났습니다.
철계단을 지나 능선 정자까지
잔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급하게 솟은 철계단이 이어집니다. 잔도 위에서는 경치 구경하느라 힘든 줄 몰랐는데, 여기서부터는 정직하게 허벅지로 올라야 했습니다. 한낮이 가까워지면서 햇볕이 따가워졌고, 물 한 병을 이 구간에서 거의 다 비웠습니다.
능선에 올라서니 정자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그늘에 앉아 남은 김밥을 먹었습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이미 해가 머리 위에 올라 있었고 물도 얼마 남지 않아 정상은 다음 계절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하늘길만으로도 이 산에 온 값은 충분히 하고 남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섬진강으로 하산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을 되짚었습니다. 잔도를 반대 방향으로 걸으니 아침에 보지 못한 각도로 강이 보였고, 햇빛이 높아지면서 물빛도 한층 짙어져 있었습니다. 돌계단 내리막은 무릎에 부담이 꽤 가서 스틱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주차장에 닿은 뒤 강변길을 따라 잠깐 걸으며 다리를 풀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면 요강바위가 있는 장군목 일대라는데, 그건 다음에 정상과 함께 묶어 보기로 했습니다. 주차장 원점회귀로 총 거리는 3km 남짓, 쉬는 시간을 넉넉히 넣어 3시간이 조금 안 걸렸습니다. 높이는 낮아도 바위와 강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산은 흔치 않았습니다. 여름 끝자락의 땀값을 하고도 남는 하루였습니다.
코스: 용궐산치유의숲 주차장 → 돌계단 → 하늘길(잔도 1,096m) → 철계단 → 능선 정자 → 원점회귀 (약 3km, 2~3시간 / 정상까지 이어 가면 6km 안팎, 4시간 안팎)
난이도: 중 (잔도 자체는 평탄하지만 들머리 돌계단과 잔도 이후 철계단이 가파름)
주차: 용궐산치유의숲 주차장 무료, 입장료 4,000원(2,000원 순창사랑상품권 환급), 하늘길 운영 3~11월 09:00~17:00, 12~2월 09:00~16:00
추천 시기: 가을 초입부터 늦가을, 봄. 한여름은 그늘이 적어 이른 아침 출발 권장. 주말 오전에는 주차장이 일찍 차고 우천·강풍 시 통제될 수 있음
준비물: 물 1L 이상, 등산화, 스틱(돌계단 내리막), 모자와 선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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