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청량산은 오래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산이었습니다. 높이 870m 남짓, 숫자만 보면 만만한데 사진마다 절벽 위에 절이 걸려 있고 봉우리 사이에 다리가 떠 있어서 '저기를 어떻게 걷지' 싶었거든요. 6월 초, 신록이 가장 짙을 때를 골라 새벽에 집을 나섰습니다. 입석 주차장에 차를 대니 아침 여덟 시가 조금 넘어 있었고, 평일이라 주차장은 절반쯤 비어 있었습니다.
입석에서 청량사까지, 첫 30분
입석에서 시작하는 길은 처음부터 돌계단입니다. 짧지만 경사가 있어 몸이 덜 풀린 아침에는 숨이 금방 찼습니다. 그래도 길 양옆이 온통 초록이라 자꾸 걸음이 늦어졌습니다. 30분쯤 오르니 나무 사이로 회백색 바위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 아래 기와지붕이 층층이 앉아 있었습니다. 청량사였습니다.
절 마당에 올라서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뒤로는 바위 절벽, 앞으로는 골짜기, 그 사이 좁은 터에 전각들이 계단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절인데, 이 자리를 골라낸 안목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유리보전 앞에서
본전인 유리보전 앞에 섰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고, 현판 글씨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홍건적을 피해 이 산에 들어왔던 왕이 절벽 아래 절에 남긴 글씨라니, 마루에 앉아 그 시절을 잠깐 상상해 봤습니다. 안에는 보물로 지정된 건칠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어 조용히 참배만 하고 나왔습니다.
마당 한쪽 소나무 그늘에 앉아 물을 마셨습니다. 6월인데도 바람이 서늘했습니다. 옛 이름이 물의 산이라는 뜻의 수산(水山)이었다가 조선 시대에 맑고 서늘하다는 청량산(淸凉山)이 됐다는데, 그늘에 앉아 있으니 이름이 왜 바뀌었는지 몸으로 알 것 같았습니다. 퇴계 이황이 스스로를 '청량산인'이라 부를 만큼 아꼈던 산이라는 것도 이해가 갔습니다.
하늘다리와 장인봉
절을 나와 자소봉 쪽으로 올랐습니다. 여기부터가 진짜 산행이었습니다. 철계단이 연이어 나오고 바윗길이 이어져서, 거리는 짧은데 다리에 오는 부담은 제법이었습니다. 자소봉과 탁필봉, 연적봉을 차례로 지났는데 붓끝 같다는 탁필봉, 벼루 물그릇을 닮았다는 연적봉이라는 이름이 바위 생김새와 딱 맞아떨어져서 혼자 웃었습니다. 열두 봉우리를 육육봉(六六峰)이라 부른다는데, 능선에 서면 그 봉우리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게 손에 잡힐 듯 가까웠습니다.
선학봉과 자란봉 사이에 걸린 하늘다리에 닿았습니다. 길이 90m 남짓, 해발 800m 안팎에 걸려 있어 국내 산악 현수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고 합니다. 바람이 불자 다리가 출렁여서 난간을 꼭 잡고 건넜습니다. 발아래 협곡과 맞은편 기암을 보는 순간이 이날 산행의 절정이었는데, 카메라를 꺼낼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다리를 건너 장인봉 정상에 서니 산자락을 감아 도는 낙동강 물굽이가 내려다보였습니다.
다시 청량사로
하산은 청량폭포 쪽으로 내려오는 순환 코스도 있지만, 저는 아침에 본 절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왔던 길로 되돌아 청량사를 지났습니다. 오후 햇살이 들어온 절은 아침과 표정이 달랐습니다. 돌계단을 내려오며 뒤를 돌아보니 산자락에 안긴 전각이 점점 작아졌습니다.
입석에 내려오니 오후 두 시가 조금 안 됐습니다. 걸은 거리는 6km 안팎, 쉬는 시간을 넉넉히 넣어 다섯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크지 않은 산인데 바위와 절, 다리와 이야기가 이렇게 촘촘히 들어찬 산은 처음이었습니다. 산행이 부담스러운 분이라면 입석에서 청량사까지만 다녀오셔도 이 산의 정취는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코스: 입석 → 청량사 → 자소봉 → 하늘다리 → 장인봉 → 왕복 (약 6km, 5시간 · 휴식 포함)
주차: 입석 주차장 (무료). 선학정에서도 출발 가능
난이도: 중급. 거리는 짧지만 철계단·바윗길이 많아 체감 난이도가 높습니다
추천 시기: 신록의 6월, 단풍의 10월 중하순. 하늘다리는 강풍·결빙 시 통제될 수 있으니 도립공원 안내 확인
준비물: 접지력 좋은 등산화, 장갑(철계단 난간), 겨울에는 아이젠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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