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 한파가 지나간 다음 날 새벽에 평창으로 향했습니다. 계방산은 해발 1,577m로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인데, 들머리인 운두령이 이미 1,089m라서 두 시간이면 정상에 설 수 있다는 말에 겨울 산행 첫 목적지로 골랐습니다. 운두령 주차장에 도착한 건 아침 일곱 시 반, 차 문을 여는 순간 뺨이 얼얼했습니다. 기온은 영하 14도였습니다.
운두령,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서리꽃
아이젠을 차고 계단을 오르자 10분도 안 돼 나뭇가지마다 상고대가 붙어 있었습니다. 고개 자체가 높으니 몸이 풀리기도 전에 눈꽃 속으로 들어가는 셈입니다. 길은 능선을 따라 한 줄로 이어져 갈림길이 거의 없었고,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눈 위에 또렷했습니다. 하늘은 잔뜩 흐려서 능선 위쪽은 안개에 묻혀 있었습니다.
계방산이라는 이름은 계수나무 계(桂)에 꽃다울 방(芳)을 쓴다는데, 정작 우리나라엔 계수나무가 자생하지 않아 내력은 분명치 않다고 합니다. 옛 지도에는 제비 연(燕) 자를 쓴 연방산으로 적힌 예도 있다고 하니, 이름보다 산이 먼저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헬기장이 있는 1,490m대 봉우리에 닿았습니다. 여기서부터 바람이 세졌습니다.
정상, 그리고 잠깐 열린 하늘
마지막 계단을 오르는 동안 얼굴을 가린 버프가 입김에 얼어 딱딱해졌습니다. 정상은 넓게 트여 있었지만 사방이 구름이라 오대산도 설악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맑은 날에는 백두대간 산줄기가 겹겹이 펼쳐진다는데, 겨울 계방산은 흐린 날이 더 많다고 하니 조망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구름이 능선을 넘어가는 모습 자체가 볼거리였습니다.
정상석 사진만 찍고 내려서려는데 갑자기 머리 위가 환해졌습니다. 구름이 찢어지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났고, 햇빛을 받은 상고대가 일제히 반짝였습니다. 채 3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그 장면을 보려고 두 시간을 올라온 것 같았습니다. 아래 사진이 그때 찍은 것입니다.
노동계곡으로 하산
하산은 정상 아래 주목 군락지를 지나 노동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아름드리 주목이 눈을 이고 서 있는 구간은 걸음이 자꾸 멈췄습니다. 계곡 길로 접어들자 바람이 뚝 끊기고 대신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곳이 있어 스패츠를 챙겨 온 게 다행이었습니다. 이승복 생가터 쪽으로 내려서니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어 있었고, 전체 9km에 다섯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짧은 산행으로 1,500m급 고봉의 눈꽃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계방산은 겨울 산행 입문지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다만 능선의 바람은 예상보다 훨씬 매서웠습니다. 얼굴을 가릴 것과 여벌 장갑은 꼭 챙기시길 권합니다.
코스: 운두령 → 헬기장 → 정상 → 주목 군락지 → 노동계곡 → 이승복 생가터 (약 9km, 5시간)
짧게: 운두령 → 정상 왕복 (약 8km, 4시간). 갈림길이 거의 없어 길 잃을 염려가 적습니다
주차: 운두령 주차장. 들머리·날머리가 다르면 차량 회수 계획 필요
추천 시기: 12월 말~2월 초, 한파 직후 맑은 오전. 해가 오르면 서리꽃이 금세 떨어집니다
준비물: 아이젠·스패츠·방풍 의류·버프(얼굴 가리개)·여벌 장갑. 국립공원 통제 안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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