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5

내연산, 보경사 12폭포 계곡길 따라 관음폭포와 연산적교를 건너는 포항의 여름 산행

7월 마지막 주, 더위를 피해 갈 곳을 고르다 물이 많은 계곡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의 내연산은 주봉인 삼지봉이 710m, 가장 높은 향로봉이 930m로 높이만 보면 수수한 산입니다. 그런데 이 산을 산림청 100대 명산에 올려놓은 것은 봉우리가 아니라 보경사에서 시작되는 계곡입니다. 열두 개의 폭포가 이어지는 이 골짜기는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됐고, 2023년에는 이름이 내연산보경사 시립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있던 1733년에서 1735년 사이에 이곳 폭포를 그려 '내연삼용추도'를 남겼다는 이야기까지 읽고 나니 더 미룰 이유가 없었습니다.

관음폭포 아래 소에서 올려다본 연산적교
관음폭포 아래 소에서 올려다본 연산적교. 이 장면 하나를 보려고 포항까지 왔습니다.

보경사에서 출발

아침 7시 반, 보경사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주차장은 넓고 무료였고, 2023년 5월부터는 보경사 입장료도 없어져 매표소 앞을 그냥 지나갔습니다. 기온은 벌써 25도를 넘었고 공기가 축축해 걷기도 전에 등이 젖기 시작했습니다. 602년 신라 지명법사가 세웠다는 보경사 담장을 끼고 계곡길로 들어서니 물소리가 먼저 따라붙었습니다. 초반 길은 거의 평지라 숨 고를 일이 없었습니다. 1.2km쯤 걸어 문수봉 갈림길을 지나고 300m를 더 가자 첫 번째 폭포인 상생폭포가 나왔습니다. 두 줄기가 나란히 떨어지는 모습이 이름 그대로였습니다. 이어서 보현폭포, 삼보폭포까지는 길이 순해서 산책하듯 걸었습니다.

상생폭포를 지나 만난 작은 물줄기
상생폭포를 지나 만난 작은 물줄기. 셔터를 길게 열어 두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잠룡폭포를 지나 관음폭포로

삼보폭포를 지나면서 계곡이 눈에 띄게 좁아졌습니다. 양쪽으로 벼랑이 높아지고 길은 바위 위를 타고 돌았습니다. 네 번째 잠룡폭포는 영화 '남부군'을 찍은 곳으로 알려진 자리인데, 소 색깔이 짙은 초록이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다섯 번째 폭포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갑자기 시야가 열리면서 관음폭포가 나타났습니다. 두 줄기로 떨어지는 쌍폭 옆에 관음굴이라는 큰 굴이 뚫려 있고, 그 위로 주황색 다리가 협곡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연산적교였습니다. 굴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폭포 물줄기가 바로 눈앞에서 떨어졌고, 굴 안은 바깥보다 몇 도는 서늘했습니다. 여기까지 땀을 흘린 보람이 한 번에 돌아오는 자리였습니다.

협곡 위를 가로지르는 연산적교
협곡 위를 가로지르는 연산적교. 관음굴 입구에서 찍었습니다.
좁은 협곡 안쪽의 폭포와 하늘
좁은 협곡 안쪽, 벼랑 사이로 하늘이 한 줄기만 보였습니다.

연산적교를 건너 연산폭포로

다리 위에서는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발아래로 관음폭포가 내려다보이고 다리가 발걸음마다 조금씩 울렁거려서, 난간을 잡고 앞만 보고 건넜습니다. 다리를 건너 바위 모퉁이를 돌자 일곱 번째 폭포인 연산폭포가 나왔습니다. 열두 폭포 가운데 가장 큰 폭포로, 높이가 30m 안팎인 물줄기가 학소대라 부르는 절벽 아래로 한 번에 떨어졌습니다. 물보라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안경이 금세 젖었습니다. 이 일대 폭포들은 2021년 '포항 내연산 폭포'라는 이름으로 국가 명승 지정이 예고됐을 만큼 경관을 인정받은 곳인데, 앞에 서 보니 왜 그런지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폭포 옆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작은 물줄기 앞에 앉아 20분을 보냈습니다.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
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 발을 담그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선일대에 올라

관음폭포 옆 벼랑 위에는 선일대라는 자리가 있고 꼭대기에 정자가 하나 올라앉아 있습니다. 오르는 길은 짧지만 가팔라서,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게 숨이 턱까지 찬 구간이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 몇 번이나 멈춰 닦아야 했습니다. 정자에 올라서니 조금 전 건넌 연산적교가 장난감처럼 작게 내려다보였고, 그 아래 소의 초록빛이 벼랑 사이로 들여다보였습니다. 멀리는 주변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졌습니다. 정자 그늘에 앉아 물을 반 병 비우고 바람을 맞으니 올라온 수고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선일대에서 내려다본 계곡과 연산적교
선일대에서 내려다본 계곡. 조금 전 건넌 연산적교가 벼랑 사이에 걸려 있었습니다.

다시 관음폭포 소 앞에서

선일대에서 내려와 다시 관음폭포 아래 소로 갔습니다. 물가 바위에 앉아 올려다보니 방금 서 있던 정자가 벼랑 끝에 작게 보였습니다. 소 주변은 사방이 절벽이라 햇볕이 한낮에도 잠깐만 들고,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물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리 아래로 가서 주황색 기둥을 올려다보고, 머리 위를 덮은 절벽에 기대 누워 하늘을 보고, 그렇게 30분을 더 보냈습니다. 이 소 앞에서 보낸 시간이 오늘 산행에서 제일 길었습니다.

소 앞에서 올려다본 벼랑과 선일대 정자
소 앞에서 올려다본 벼랑. 꼭대기의 정자가 방금 서 있던 선일대입니다.
연산적교 아래에서 올려다본 주황색 기둥
연산적교 아래에서 올려다본 기둥. 위에서 건널 때보다 아래에서 보는 편이 마음이 편했습니다.
머리 위를 덮은 절벽과 하늘
머리 위를 덮은 절벽. 바위에 기대 누워서 찍었습니다.

보경사로 하산

열두 폭포를 다 보려면 은폭포 너머로 더 올라가야 하지만, 오늘은 연산폭포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 그대로였는데, 오후가 되자 계곡에 물놀이 온 가족들이 늘어 아침과는 전혀 다른 골짜기가 돼 있었습니다. 보경사 앞 주차장에 돌아오니 오후 1시 조금 전, 사진 찍고 앉아 쉰 시간을 다 합쳐 다섯 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걸은 거리는 7km 안팎, 고도는 거의 올리지 않은 산행이었습니다. 정상 없이도 이렇게 꽉 찬 하루가 되는 산은 흔치 않습니다. 가을 단풍 때와 겨울 빙폭 때 두 번은 더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차에 올랐습니다.

돌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협곡과 연산적교
돌아 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협곡과 연산적교.
산행 메모
코스: 보경사 – 상생폭포 – 잠룡폭포 – 관음폭포 – 연산적교 – 연산폭포 – 선일대 – 보경사 원점회귀, 약 7km·휴식 포함 4~5시간(쉬지 않고 걸으면 3시간 안팎)
난이도: 하~중. 계곡길은 평탄하지만 선일대 오르막은 짧고 가파릅니다.
주차: 보경사 공영주차장(무료, 대형). 보경사 입장료는 2023년 5월부터 없습니다.
추천 시기: 여름 신록과 물놀이, 가을 단풍, 겨울 빙폭. 봄·가을 산불조심기간에는 일부 구간이 통제될 수 있으니 출발 전 확인이 필요합니다.
준비물: 물 1L 이상, 미끄럼에 강한 신발, 땀 수건, 벌레 기피제,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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