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폭포를 보러 산에 가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내변산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눈 온 다음 날 찍힌 직소폭포 사진 한 장을 보고 나서, 그 주 토요일 새벽에 부안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1971년 도립공원으로 출발해 1988년 국립공원이 된 곳이고, 산과 바다를 한 공원 안에 품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2023년에는 전북 서해안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지정됐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 산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해발 424m의 관음봉까지 한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고, 그 길 위에 30m 폭포와 천년 절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소폭포로
아침 여덟 시 반, 내소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택시로 내변산 탐방지원센터까지 넘어갔습니다. 기온은 영하 3도 안팎이었고 바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자동 주차장에서 자연보호헌장탑을 지나 직소보 옆길을 걷는 동안은 거의 평지라 몸이 더워질 틈이 없었고, 선녀탕과 분옥담이 이어지는 골짜기로 들어서면서야 숨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탐방지원센터에서 폭포까지 약 2.3km, 안내판에는 50분이라 적혀 있었는데 눈길이라 한 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직소폭포는 소문대로였습니다. 약 30m 높이에서 한 줄기로 떨어진 물이 옥빛 소에 고여 있고, 양쪽 바위벽과 나무에는 전날 내린 눈이 그대로 얹혀 있었습니다. 2020년에 명승(제116호)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은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는데, 그 자리에 서 보면 따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소 가장자리를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한참을 찍었습니다. 겨울이라 수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물줄기가 곧게 떨어진다는 이름의 뜻이 오히려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여기서 20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손이 시려 장갑을 벗었다 꼈다 하면서도 자리를 뜨기가 아쉬웠습니다.
재백이고개, 그리고 내려다본 내소사
폭포에서 재백이고개까지는 1.5km입니다. 완만하던 길이 고개 직전에서 급해집니다. 눈이 다져져 미끄러운 구간이 몇 군데 있어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고개를 넘어 관음봉 삼거리로 붙는 능선길이 이 코스의 고비였습니다. 바위에 쌓인 눈을 밟으며 올라서는데, 손끝이 시린 것과 등이 땀에 젖는 것이 동시에 왔습니다.
삼거리 못 미쳐 바위가 트이는 자리에서 발아래로 내소사가 보였습니다. 눈을 인 기와지붕들이 골짜기 안에 가지런히 앉아 있었습니다. 백제 때 창건됐다고 전하는 절을 이 높이에서 내려다보니, 산이 절을 품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지붕들을 보고 있으니 아침 생각이 났습니다. 차를 세우고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걸어 본 절 진입로에는 나무들이 눈을 이고 서 있었고, 그 너머로 바위 봉우리가 올려다보였습니다. 그때는 저 위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관음봉 정상
관음봉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0.6km입니다. 짧지만 바위 구간이 이어집니다. 눈을 인 기암이 능선을 따라 늘어선 모습은 400m대 산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변산의 최고봉은 의상봉(약 508m)이지만 출입이 제한돼 있어, 관음봉이 사실상 정상 노릇을 합니다.
벼랑 아래에서 올려다본 바위는 켜켜이 쌓은 책 같았습니다. 틈마다 눈이 끼어 있어 층이 더 또렷했습니다. 바위를 잡고 오르는 손이 차가웠지만, 이런 바위를 밟으러 겨울 산에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 표지석 앞에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눈 덮인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졌고, 사진을 몇 장 찍고 나니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아 주머니에 넣고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열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세봉 능선, 들녘과 바다
하산은 세봉 쪽으로 돌았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서자 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등을 데웠습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능선이 내려앉고, 그 끝 들녘 너머로 바다가 희끗하게 빛났습니다. 곰소만 쪽이라고 했습니다. 눈은 북사면에만 남아 있어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겨울 들녘의 누런빛이, 북쪽으로 돌리면 흰빛이 번갈아 보였습니다.
세봉 가까운 바위에 앉아 보온병의 물을 따르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들녘이 발아래 펼쳐지고, 멀리 산줄기 사이로 마을이 보였습니다. 바위가 햇볕에 데워져 있어 삼십 분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내변산을 왜 산림청 100대 명산에 넣었는지, 이 바위 하나로도 설명이 됐습니다.
내소사로 하산
세봉 삼거리에서 내소사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에 눈이 얼어 있어 카메라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이젠을 끝까지 차고 나무를 잡아 가며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절 마당을 지나 일주문까지 이어지는 약 600m의 전나무 숲길은 눈이 녹아 길이 질었지만, 산에서 내려온 다리에는 그 평지가 선물 같았습니다. 총 약 7km, 쉬엄쉬엄 네 시간 반. 폭포와 바위와 절을 하루에 다 보고 내려온 날이었습니다.
코스: 내변산 탐방지원센터 → 직소폭포 → 재백이고개 → 관음봉 삼거리 → 관음봉 → 세봉 → 내소사 (약 7km, 4시간 30분 안팎)
난이도: 중. 재백이고개~관음봉 삼거리 오르막과 세봉~내소사 내리막이 가파릅니다.
주차: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정액제 유료) 또는 내소사 주차장(시간제 유료). 두 지점 사이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추천 시기: 눈 온 다음 날의 겨울. 가을 단풍철과 비 온 뒤의 폭포도 좋습니다.
준비물: 아이젠·스패츠 필수, 장갑 여벌, 보온병, 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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