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주차장에서 출발
2월 끝자락, 눈 산행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 남쪽 끝 해남으로 내려갔습니다. 두륜산은 해남군 삼산면에 솟은 해발 703m의 산인데, 높이만 보고 만만하게 봤다가 혼이 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1979년 12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산림청 100대 명산에도 들어 있는 산이라 언젠가는 가야지 하던 참이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 대흥사 주차장에 닿은 것이 아침 8시 반이었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기온은 영상 3도 안팎, 바람이 거의 없어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코스는 대흥사에서 북미륵암을 거쳐 오심재로 올라 노승봉과 가련봉을 넘고, 만일재에서 두륜봉을 찍은 뒤 진불암 쪽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로 잡았습니다. 10km가 조금 넘고 다섯 시간 반쯤 잡으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북미륵암을 지나 오심재로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 경내를 가로질러 북미륵암 길로 들어섰습니다. 초반은 돌이 깔린 완만한 숲길이라 몸을 풀기 좋았는데, 북미륵암을 지나면서부터 경사가 서서히 서기 시작했습니다. 겉옷을 벗고도 등이 축축해질 즈음 오심재에 올라섰고, 여기서부터는 능선이라 바람이 제법 불어 다시 겉옷을 꺼내 입었습니다. 노승봉으로 붙는 구간은 바위에 로프와 철계단이 걸려 있어 손을 써야 했습니다. 카메라는 배낭에 넣어 두고 올랐습니다.
노승봉에서 가련봉으로
노승봉(685m) 너른 바위에 올라서니 비로소 사방이 트였습니다. 건너편으로 케이블카 전망대가 선 고계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겹겹의 산줄기가 흐릿하게 이어졌습니다. 숨을 고르고 10분쯤 더 가 가련봉에 섰습니다. 두륜산의 정상입니다.
정상 데크 끝에 집채만 한 바위가 하나 놓여 있는데, 그 바위에 기대어 앉으니 바람이 막혀 햇볕이 따뜻했습니다. 두륜산은 가련봉을 비롯해 두륜봉, 고계봉, 노승봉, 도솔봉 등 여덟 봉우리가 둥글게 둘러선 모양이라, 능선 어디에 서도 건너편 봉우리가 마주 보였습니다.
정상에서 남쪽을 보면 암봉들이 줄지어 이어지고 그 끝에 바다가 걸려 있었습니다. 늦겨울이라 능선은 온통 마른 풀빛이었지만, 그 덕에 바위의 결이 더 또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만일재, 그리고 두륜봉
가련봉에서 만일재로 내려서는 구간이 이 산에서 가장 가파른 곳이었습니다. 나무 계단과 철제 난간이 잘 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무릎에 힘을 많이 줘야 했습니다. 내려가는 내내 발아래로 들녘과 바다가 펼쳐져 자꾸 걸음이 멈췄습니다.
만일재는 가을이면 억새로 이름난 넓은 안부인데, 늦겨울이라 억새는 모두 마른 금빛이었습니다. 바람에 쓸리는 억새 사이로 들녘과 바다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자리가 있어 거기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만일재에서 두륜봉(630m)까지는 20분 남짓입니다. 두륜봉 바로 아래에는 바위가 다리처럼 걸린 구름다리가 있어 그 사이를 지나 올라갑니다. 두륜봉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바람이 세져 손이 시렸고, 서둘러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진불암으로 하산
두륜봉에서 진불암 방향으로 내려서면 금세 바람이 잦아들고 숲길이 이어집니다. 진불암을 지나 대흥사 경내를 다시 가로질러 주차장에 닿은 것이 오후 2시 반이었습니다. 총 10km 남짓, 쉬는 시간을 포함해 여섯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703m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오르내림이 많아 다리는 묵직했지만, 산 위에서 바다와 들녘을 함께 내려다본 시간이 그 수고를 충분히 갚아 주었습니다.
코스: 대흥사 주차장 – 북미륵암 – 오심재 – 노승봉 – 가련봉 – 만일재 – 두륜봉 – 진불암 – 대흥사 원점회귀, 약 10.5km, 5시간 30분~6시간
난이도: 중상 (노승봉·가련봉 앞뒤로 로프·철계단이 걸린 암릉 구간)
주차: 대흥사 주차장(유료), 케이블카 승강장이 있는 집단시설지구에도 주차 가능
추천 시기: 늦겨울~초봄 맑은 날(조망), 가을(만일재 억새)
준비물: 장갑, 바람막이, 물 1L 이상,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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