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정상에서 일출과 운해를 보고 싶어서 10월 중순, 전날 해인사 아랫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밤새 일교차가 커서 골짜기에 안개가 내려앉을 조건이었습니다. 탐방지원센터에 새벽 입산 가능 시간을 미리 확인해 두고, 헤드랜턴을 켜고 해인사 쪽 들머리를 나선 게 새벽 세 시 반이었습니다.
어둠 속 해인사 코스
해인사 코스는 상왕봉까지 편도 4~5km, 오르는 데 두 시간 반 안팎이 걸리는 중급 코스입니다. 해인사가 이미 산 중턱에 있어 고도 부담은 적은 편인데, 어둠 속에서 돌계단을 오르니 거리 감각이 없어 더 길게 느껴졌습니다. 랜턴 불빛 안에 들어오는 건 돌계단과 단풍 든 나뭇잎뿐이었고, 가끔 뒤에서 다른 랜턴 불빛이 따라왔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동쪽 하늘이 조금씩 검푸르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운해 위로 뜨는 해
정상부에 서니 발아래가 온통 구름이었습니다. 밤새 골짜기에 내려앉은 안개가 운해로 남아 있었고, 그 위로 산줄기가 섬처럼 떠 있었습니다. 동쪽 하늘이 붉어지다가 해가 능선 위로 올라오는 순간, 겹겹이 밀려오는 능선이 먼 것부터 하나씩 빛을 받았습니다. 손이 시려 장갑을 벗었다 꼈다 하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이 장면 하나로 새벽 산행의 수고가 다 갚아졌습니다.
불꽃 같은 바위, 상왕봉과 칠불봉
날이 밝자 정상부 바위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세로로 갈라지며 기둥처럼 서 있고, 그 틈을 붙들고 자란 소나무가 바위와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이 산의 바위를 '뾰족한 돌이 줄을 잇달아 불꽃 같다'고 하여 석화성(石火星)이라 했다는데, 아침빛을 받은 바위를 보니 그 비유가 그대로 와닿았습니다.
정상은 오랫동안 상왕봉(1,430m)으로 알려져 왔는데, 측량 결과 바로 옆 칠불봉이 1,433m로 3m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되어 지금은 두 봉우리를 함께 정상으로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상왕봉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봉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칠불봉 쪽에서 건너다보니 정말 그렇게 보였습니다. 두 봉우리를 오가며 한 시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내려다본 들녘과 강
해가 높아지자 운해가 서서히 걷히고 그 아래 들녘과 마을이 드러났습니다. 산자락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도 보였습니다. 정상 일대는 사방이 트여 있어 주변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산은 왔던 해인사 길로 되짚었습니다. 밤에 올라올 때 못 본 단풍이 계단 양옆에 가득했고, 아침 산행을 시작하는 분들과 계속 마주쳤습니다. 해인사에 내려오니 오전 열 시, 절 마당을 한 바퀴 돌고 홍류동 계곡 소리길을 잠깐 걸은 뒤 차로 돌아갔습니다. 걸은 거리는 9km 안팎, 정상에서 머문 시간을 포함해 여섯 시간 반이었습니다.
북쪽 백운동에서 오르는 만물상 코스는 이번엔 가지 못했습니다. 서성재까지 3km의 암릉을 지나 정상까지 세 시간 반이 걸리는 최상급 난이도 코스라는데, 다음에는 그 길로 올라 볼 생각입니다.
코스: 해인사 → 상왕봉 → 칠불봉 → 왕복 (약 9km, 6시간 30분 · 일출 대기 포함)
난이도: 중급. 만물상 코스(백운동 → 서성재 → 칠불봉)는 최상급, 단풍철 예약제
주차: 해인사 주차장. 새벽 입산 가능 시간은 탐방지원센터에 미리 확인
추천 시기: 10월 중순~11월 초 단풍. 운해·일출은 일교차 큰 가을 새벽
준비물: 헤드랜턴·장갑·여벌 옷. 새벽 정상부는 한겨울처럼 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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