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4

바래봉, 팔랑치 능선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국내 최대 철쭉 군락의 산

5월 셋째 주 토요일, 남원 운봉으로 향했습니다. 바래봉 철쭉은 산 아래부터 차례로 피어 올라와 5월 중·하순에 정상 부근이 만개한다고 해서 날짜를 그렇게 잡았습니다. 꽃철 주말이라 주차장이 일찍 찬다는 말에 새벽 다섯 시에 출발했는데, 용산주차장(지리산허브밸리)에 도착한 일곱 시 반에도 이미 절반은 차 있었습니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 초반

바래봉 산행은 처음 한 시간이 임도입니다. 넓고 완만한 길이 계속 이어져서 지루하다는 분도 있지만, 저는 아침 안개가 걷히는 운봉 분지를 내려다보며 걷는 게 좋았습니다. 급경사가 없으니 숨이 차지 않는 대신 오르막이 길게 이어져 다리가 서서히 무거워졌습니다. 나무 그늘 구간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자 시야가 확 트였습니다.

초반 임도의 나무 그늘 구간. 여기까지는 산행이라기보다 산책이었습니다.
초반 임도의 나무 그늘 구간. 여기까지는 산행이라기보다 산책이었습니다.
능선에 올라서면 초지 길이 정상으로 이어집니다. 키 큰 나무가 사라지고 하늘이 넓어졌습니다.
능선에 올라서면 초지 길이 정상으로 이어집니다. 키 큰 나무가 사라지고 하늘이 넓어졌습니다.
완만한 능선을 오르는 사람들. 멀리서 보면 들판을 걷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완만한 능선을 오르는 사람들. 멀리서 보면 들판을 걷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정상, 그리고 팔랑치로

정상은 해발 1,165m, 지리산 서북능선의 끝자락 봉우리입니다. 사방이 트여 있어 발아래로 운봉 분지의 너른 들판이 내려다보였고, 반대편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겹겹이 이어졌습니다. 정상석 앞에 줄이 길어 사진은 뒤로 미루고 곧장 팔랑치 쪽으로 향했습니다. 철쭉 군락의 중심은 정상이 아니라 남쪽 팔랑치 일대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이날은 시야가 좋아 산줄기가 멀리까지 보였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이날은 시야가 좋아 산줄기가 멀리까지 보였습니다.
능선에서 담은 파노라마. 한쪽은 들판, 한쪽은 지리산입니다.
능선에서 담은 파노라마. 한쪽은 들판, 한쪽은 지리산입니다.

팔랑치로 내려서는 능선에 들어서자 분홍빛이 시작됐습니다. 사람 허리에서 키 높이까지 자란 철쭉이 능선을 덮고 있어, 길이 꽃 사이로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철쭉은 1970년대 초 운봉 일대에 면양 목장이 들어서면서 양떼가 풀과 잡목을 뜯어 먹고 독성이 있는 철쭉만 남겨 두어 생긴 군락이라고 합니다. 양이 만든 꽃밭이라니, 걸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철쭉이 양옆을 가득 채운 능선 계단길. 이 사진을 찍으려고 5월에 왔습니다.
철쭉이 양옆을 가득 채운 능선 계단길. 이 사진을 찍으려고 5월에 왔습니다.
능선을 뒤덮은 철쭉 군락. 팔랑치로 내려서는 길입니다.
능선을 뒤덮은 철쭉 군락. 팔랑치로 내려서는 길입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분홍빛. 걷는 내내 꽃향기가 따라왔습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분홍빛. 걷는 내내 꽃향기가 따라왔습니다.

탐방로에는 나무 데크와 계단이 잘 놓여 있어 꽃을 밟지 않고 군락 한가운데를 지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사람이 많아 데크 위에서 자주 멈춰 서야 했고, 그때마다 앞뒤 분들과 "올해는 꽃이 잘 폈네요" 같은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팔랑치에 닿아 바위에 앉아 김밥을 먹었습니다. 그늘이 없어 햇볕이 따가웠는데 모자를 챙겨 온 게 다행이었습니다.

철쭉밭 사이를 걷는 사람들. 꽃철 주말이라 데크 위가 붐볐습니다.
철쭉밭 사이를 걷는 사람들. 꽃철 주말이라 데크 위가 붐볐습니다.
철쭉 사이로 난 나무 데크 계단. 꽃을 밟지 않고 군락 한가운데를 지날 수 있습니다.
철쭉 사이로 난 나무 데크 계단. 꽃을 밟지 않고 군락 한가운데를 지날 수 있습니다.

되돌아오는 길

팔랑치에서 다시 정상을 거쳐 용산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오후가 되자 초원 같은 능선에 바람이 불어 걷기 좋았습니다. 바래봉이라는 이름은 스님의 공양 그릇인 바리때를 엎어 놓은 듯한 둥근 산세에서 왔다는데, 하산길에 뒤돌아보니 정말 뾰족한 데 하나 없이 둥글게 솟아 있었습니다. 주차장에 내려오니 오후 한 시 반, 왕복 10km 남짓에 여섯 시간 걸렸습니다. 꽃 앞에서 멈춰 선 시간이 절반은 됐을 겁니다.

초원과 철쭉이 어우러진 능선. 하산길에 뒤돌아본 모습입니다.
초원과 철쭉이 어우러진 능선. 하산길에 뒤돌아본 모습입니다.

지리산의 웅장함보다 부드러움을 보여 주는 산이었습니다. 급경사가 거의 없어 평소 등산과 거리가 먼 분도 충분히 오르실 수 있습니다. 5월의 분홍빛 능선이 궁금하시다면 내년 봄 일정에 넣어 두시길 권합니다.

산행 메모
코스: 용산주차장 → 임도 → 정상 → 팔랑치 → 왕복 (약 10km, 6시간 · 꽃 구경 포함)
짧게: 용산주차장 → 정상 왕복 (약 8km, 3시간)
길게: 정령치 → 고리봉 → 세걸산 → 팔랑치 → 바래봉 서북능선 종주 (약 12km, 5~6시간)
주차: 용산주차장(지리산허브밸리). 꽃철 주말은 이른 아침에 만차
추천 시기: 5월 중순 전후. 팔랑치 구간이 정상보다 며칠 먼저 절정
준비물: 모자·선크림·물 넉넉히. 능선에 그늘이 거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다른 명산 산행기는 mountain100.com에서 이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바래봉 철쭉 능선을 담은 힐링 영상

바래봉의 봄 철쭉과 주왕산의 가을 단풍 사진에 직접 만든 이지팝 6곡을 입힌 17분짜리 영상입니다. 가사가 화면에 함께 나오고, 앞부분 8분 46초까지가 바래봉 철쭉 구간입니다. 일하거나 책을 읽을 때 틀어 두셔도 좋습니다.

더 많은 산과 음악은 유튜브 Still Times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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